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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죽은 뒤 여호수와가 히브리인을 이끌고 약속한 땅에 들어왔다. 이후 사울왕 다윗왕을 거쳐 이스라엘 3대 왕인 솔로몬 대에 이르러 왕국은 둘로 분열됐다. 기원전 903년경의 일이다. 북쪽은 이스라엘, 남쪽은 유대로 불렸다. 남쪽 유대 왕국은 솔로몬을 계승했으나 그의 아들인 르호보암을 시작으로 수많은 왕위 계승 과정에서 국가는 평탄하게 운영되지 못했다. 이집트, 아시리아 등 주변 강국들에 의해 눈치를 보는 신세였기 때문이다.

 

아시리아를 물리치고 신바빌로니아 왕국이 들어섰을 때는 히브리인들이 포로로 끌려갔고 유대 왕국은 파멸했다. 신바빌로니아는 샘족계열의한 종족인 칼데아 인이 기원전 612년 세운 왕국이다. 스스로를 바빌로니아의 후손으로 생각했으며 2대 왕인 네부카드네자르 2세(느부갓네살 2세) 시대에는 시리아 및 팔레스타인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기원전 601년에는 유대 왕국을 함락했고 수도 예루살렘은 산산조각이 났다. 이때 유대인을 포로로 끌고갔는데 이를 바빌론유수라고 한다. 이것인 시작에 불과했다.

 

기원전 586년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예루살람에 남아있던 성전을 불태우고 왕족, 귀족, 평민 할 것 없이 모조리 학살했다.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 역시 포로로 끌려갔는데 이를 2차 바빌론유수라고 한다. 포로들은 예루살렘부터 바빌론까지 1300킬로미터를 걸어야 했다. 유대의 마지막 왕인 제데이카도 포로였는데 신바빌로니아 병사들은 그의 눈을 도려냈다.

 

그리고 4년 후 또다시 바빌론유수가 일어났다. 이로서 유대의 모든 백성ㅇ이 포로가 되었고, 유대왕국은 처참하게 역사속으로 사라져 흔적도 남지 않게 되었다. 한편 포로생활 중인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문화와 종교를 기여코 지켜냈으며, 공동체 의식을 키워나갔다.

 

이후 기원전 538년 페르시아가 신바빌로니아를 멸망시켰다. 이때 페르시아의 왕 키루스 2세는 유대인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고향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은 폐허가 된 자신의 왕국을 다시 세우는데 총력을 다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생긴 그들의 공동체의식과 신에 대한 믿음은 거대한 종교의 시작을 알리는 계기가 된다. 유대교를 시작으로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전세계를 지배하는 거대 종교로 현재 자리매김하였다. 

 

이 당시에 세워진 유대교는 훗날 1세기 무렵 완성된 구약성서의 표본을 이미 완성했다. 출애굽, 바빌론 유수 등 유대인들의 역사를 기록했고, 민족적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 이러한 경전 작업에 힘을 쏟았다. 나라가 힘이 없어 늘 뿔뿔히 흩어져야 있던 유대민족에게 공동체의식과 신에 대한 집착과도 같은 태도는 불가피한 일이었다. 디아스포라의 정신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